일상다반사

냉면을 짜파게티처럼 끓이다 낭패 본 사연

White Saint 2010. 6. 30. 15:28
날씨가 더워지니 냉면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보입니다. 얼마전 RSF님의 "우리나라 냉면 값은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가?"라는 글을 본 뒤... 집에서 냉면을 한번 끓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Phoebe님의 "여름 맞이 냉면 완전 정복, 육수 내기 양념장 무절임 까지 한방에" 라는 글을 보고... "오늘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인 준비를 하러 가까운 마트로(응?) 향했습니다.
(당연히 사다 끓이지, 육수부터 제가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셨다면... 당신은 지금 심각한 뇌 활동에 저해를 받고 있는 겁니다. 더위를 드셨수? 아님 어제 드신 술이 안 깨셨수?)

면과 육수가 같이 있는 걸 찾아야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마트의 냉면칸을 탐색하다 1인분에 면 160g, 육수 310ml의 냉면을 포착... 아... 이제 냉면도 끓여보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달랑 집어서 계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십수년간 짜파게티 요리사로의 화려한 요리경력을 자랑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연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냉면을 만드리라 다짐을 하며 각오를 다진 뒤... 물을 끓이고... 면을 넣고... 면이 익은 뒤... 물을 따라 버리고... 차가운 육수를 부어서... 입안에 냉면을 집어넣는순간...
!
!!
!!!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이맛은!!!
어린시절...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앙증맞게 뛰어놀던 여자아이들의 고무줄을 10년간 숙성시킨 뒤 낫토소스에 푹 담궈먹는... 기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싶었으나... 씹어지지 않고 입안의 미꾸라지처럼 미끌거리는 아름다운 맛!!!
아...
이건...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닌... 흐느적 거리는 외계생명체를 보는 듯한 기분...
이 고무줄보다 질긴 것을 삼키면 생명줄이 질겨지는 보양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생명줄만 길어지고... 내장은 짧아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에 입안에 든 것조차... 넘기지 못한 채... 진지하고 심각하게... 5초간 왜... 난 냉면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외계생명체를 만든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한 뒤... 포장지 뒷면에 있는 조리법을 보니... 냉면은... 짜파게티처럼... 2분간 끓이는게 아닌데다... 삶고 난 뒤... 물을 따라버리는게 아니라... 체에 받치고 면을 씻어야 하는 것이더군요... -_-;;;

그래서... 이번엔 혼신의 염을 담은 냉면을 만들리라... 다짐을 한뒤... 인터넷을 살짝 뒤져보니...

1. 면을... 통째로 넣지 말고... 가닥가닥 나눠서 넣어야 한다.
2. 물이 끓을 때넣고... 다시 물이 끓으면... 꺼내야 한다.
3. 면을 꼭 씻어야... 미끌거리지 아니한다.
4. 다 씻은 면은 물기를 꼭!!! 짜야한다.

라는 냉면계의 4계명이 있더군요... 그래서... 다시 물을 끓이고... 면을 넣고... 다시 물이 끓기 시작하자마자 찬물에 씻고... 음식점에서 나오듯 면을 동그랗게 짠 뒤... 냉장고에 넣어뒀던 육수를 부으니...




이런 비쥬얼이 나오는 군요... 한번 외계 생명체를 대했던 경험으로 인해... 조금... 망설여졌으나... 조심스럽게 맛을 보니... 아... 정말... 다행히... 이번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냉면이 되었습니다. 요리 블로거이신 Pheobe님의 냉면[링크]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혼자 사는 자취인이 먹기엔 충분할 것 같네요... 다음 번엔 오이라도 좀 썰어넣고, 달걀도 삶아서 올려... 조금 더 나은 냉면에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

반찬투정 하는 어린이들은... 아마... "내가 만든 냉면을 먹어봐야~ 하아~ 엄마가 해주는건 호텔 요리사급이구나~ 하고 반찬투정 안할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