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일본 오사카-도쿄(자전거)

자전거 천국 일본에서 700km를 달리다.

White Saint 2009. 12. 25. 11:04
아... 아침이다... 커텐을 치고 잤더니... 아직 한밤중인 것만 같은데... 시간은 이미... 낮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눈을 뜨긴 했는데... 온몸이 부셔지는 것 같은 통증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팔다리들이... 제대로 붙어있는지...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손가락 발가락들을 꼼지락거려서... 확인해 보는데...
음...
이거 왠지... 내 몸이 아니라... 다른 사람 몸인 것 같다... 한 100년 냉동상태에서 깨어나는 느낌... 다리의 이곳 저곳들이 저리고 아픈 것이... 그냥... 라이딩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 그냥 포기할까... 1년에 단 일주일 주어지는 달콤한 여름휴가에... 여기와서 뭐하는 짓이야...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오늘... 도쿄까지 달리지 않는다면... 두번다시 이렇게 미친코스를 달릴 기회는 없을 것 같다...

30대로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긴 하지만... 알게 모르게... 조금씩 신체의 활력이 떨어져가는 느낌인데... 나중에... 시간과 돈이 조금 더 풍요로워 진다 하더라도... 체력이 허락해주지 않아... 이런 경험을 못하게 된다면... 오늘의 포기를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만 같다...

잘 움직이지도 않고... 움직일 때마다 통증으로 삐걱거리는... 몸을 잘 달래가며... 화장실로 가... 욕조에 물을 받고... 물 속에서 담배 한대를 물고... 여행의 7일째... 라이딩 6일째의 아침을 맞이한다... 아... 어제... 카메라 배터리가 아웃되었는데... 에휴... 오늘이 여행의 피크인데... 220-110V 전환용 돼지코를 미쳐 준비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하지만... 오늘의 풍경은 내 마음속에 담아가리라... 다짐하며... Check Out을 하고... 여행의 종착지 도쿄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10분인가 달렸는데... 벌써 목 아프고... 손목은 아리고... 엉덩이는... 엉엉거린다... 조금 더 달리다 보면... 통증은 마비되서 모를거야... 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달리다 보니... 배가 고프다...

편의점이 나와주실 타이밍이 됐는데... 됐는데... 됐는데... 하다보니... 오... 나의 구세주 편의점님이 보이신다... +_+ 스시 도시락이 있길래 하나를 사고... 갈증해소용 우유(응?)를 하나 사서 원샷을 한 뒤... 느긋하게... 편의점 앞 주차장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 처음엔 이런 곳에 철푸덕 앉아서 밥 먹는것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는데... 지금은 누가 날 쳐다보면... "뭘 봐? 밥먹는것 첨 봐?" 라며 은근히 폭주족 포스를 보여주며 뻔뻔하게 먹고 있다... 도시락을 깨끗하게 비우고... 쓰레기들은 전부 쓰레기통에 버린 뒤... 너무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고... 이제 하코네를 넘기 위해... 큰 용량의 물을 하나 사서 백팩에 넣고... 작은 크기의 물도 하나 사서 자전거에 장착한다... 장착하는 사이에 녹아버리려는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어주고... 물을 충분히 샀으니... 나고야 가던 306번 도로에서처럼 물이 떨어져... 조난의 공포를 느끼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왠지 조금 마음이 푸근해진 채... 달리기 시작한다...

지난 5월에... 미시령을 넘었던 경험이 유효했던 건지... 아니면 그저께 306번 도로에서 시트콤을 찍었던 것이 유효했던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기자기한 일본의 자연이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던 건지... 일본의 알프스라는 하코네를 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다...
이것저것 다 아니라면... 힘든 라이딩에... 정신이 몽롱해져 버린 것일지도... -_-;;;
가다보니... 왠 호수가 보인다...
와...
하늘의 구름과... 호수에 부딪쳐 반짝이는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나를... 잠시 쉬었다 가게 한다... 얼마나 쉬었을까... 더 쉬면 기껏 마비(?)시켜놓은 통증들이 다시 느껴질까 두려워... 서둘러 페달질을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대도시같은 곳에 도착했다... 이미... 해가 질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

오호... 요코하마다...
이제... 도쿄는 코앞... 시간은 계속 흐르고... 오늘의 숙소는... 나리타역 앞에 있는 호텔... 오늘 도쿄에 도착하면... 내일 하루는 도쿄 관광을 하기로 했으니... 서둘러서 가야만 한다... 아... 그런데... 도쿄는 지하철이 몇시까지 다니려나... 너무 늦게 도착하면... 도쿄에서 발이 묶일지도 모르는데... 해가 지며... 기온이 내려가니... 한결 달리기가 수월하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도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달리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드디어... 1번 국도 여행의 궁극의 지점... 1번 국도가 0km남은 도쿄 타워에 도착했다...!!!

오사카에서 출발하여... 교토-히코네-나고야-가마고리-시즈오카-도쿄로 이어지는 나의 여행의 종착점!!!




내 첫번째 해외 자전거 여행의 성공을 자축하며... 도쿄타워를 구경해주고 싶었으나... 몸이 너무 힘들다... 일단 오늘은 서둘러서 숙소로 가서 쉬기로 하고... 자전거를 분해하여... 자전거 가방에 넣어놓고... 너무 지쳐 힘이 잘 들어가지도 않는 내 양팔에게 경의를 표하며... 가방을 메고... 숙소를 향한다... ^^